제게는 참 나쁜 버릇이 있답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미안해하는 것이죠. 어떠한 관계 속에서 문제가 생길 때, 그것이 제 잘못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가 잘못했다고 정리하고 넘기곤 하거든요. 그렇게 해결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니까요. 또, 그렇게 넘기면 서로 감정소모를 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냥 자존심 살짝 꺾고, 내가 미안한 것으로 만들면 일을 키우지 않고 작게 넘길 수 있고, 또 대인배의 이미지를 얻는 효과도 얻을 수 있으니, 갈등을 다루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도 생각했죠.
어쨌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누군가 양보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지겹도록 다투고 토론하며 끝장을 보는 방법이 있고, 한쪽이 숙여주는 방법도 있는데, 저는 깔끔해보이는 쪽을 택한 거죠. 제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김없이 그렇게 하곤 했답니다. 이기겠다 맘 먹으면 결국 상대를 부수어버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물어뜯는 저인데도, 개인적인 관계 안에서는 절대 그렇게 하고싶지 않았거든요. 절대로요.
사실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그건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어요.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내 옹졸한 자존심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고싶지 않았거든요. 내 자존심만 꺾으면, 억울한 마음만 조금 참으면, 다투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와 소원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죠. 어느정도까지는요.
그런데, 어떠한 관계 속에서 풀어내지 않은 마음은 결국 그 사이를 멀어지게 하더라구요. 제가 선택한 방법은, 무언가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단지 시간을 조금 버는 것일 뿐이었어요. 빚을 더 내어서 있는 빚을 갚는 것처럼요. 아무리 친하고 소중한 사이이더라도, 혼자서 갈등을 받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죠. 그저, 한계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압력이 한없이 쌓이고있다는 사실을, 그땐 알지 못했어요. 내가 희생해서라도 어떤 관계를 지키려는 그 고집이, 그 관계를 더 처참하게 부수어 놓는다는 걸, 참 미련하게도 경험으로 알게 되는 일이 생겼답니다. 그게 작년 여름의 어느 날이었어요.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던 날부터, 목도리 없이는 외출할 수도 없는 날이 되도록, 후회와 아쉬움이 떠나질 않았어요. 네, 맞아요 제가 그 시간들을 무사히 견뎌내지 못했다면, 이 글이 쓰여지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우연한 기회에 읽은 글에 나온 내용인데, 제가 겪은 건 우울증이 관계를 망치는 참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하네요. 어떤 갈등이 있을 때 서로 토론하고, 때론 다투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을 잘 정리하고 이겨내야 하는데, 마음이 건강하지 못할 때엔 그럴 기운도, 그럴 자신도 없어지거든요. 미봉책으로 때우다가 결국 더 심하게 망가지는 거죠. 그게, 우울증이 불러 온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순간이구요.
내 잘못을 뼈저리게 배웠다고 해서, 그 습관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어요. 결국 이 녀석도 우울증이 세트로 끌고온 식구들 중 하나니까요. 앞으로도 짧지 않은 시간동안, 이 습관을 털어내진 못할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떼어낼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다른 선택을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진 않겠지만, 마음 아픈게 노력으로 다 털어낼 수 있는거면, 세상에 아직도 아픈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요. 어쩌면, 내 사과에 진정성이 없었을 수 있다는 걸 이렇게 공개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갈등을 얼른 넘기고싶은 마음보다 더 깊숙한 곳엔, 당신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싶어요. 표현의 방법이 조금 다를 뿐, 함께 잘 지내보고싶다는 마음은 같답니다. 이제부터는 같은 마음을 표현할 조금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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