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기쁨이 사라지는 병이 아니예요. 다만, 슬프고 우울한 기분이 한 번 왔다가 사라지지 않는 병이죠. 슬픔을 스스로 건강하게 이겨낼 능력을 상실한 상태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아요.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에는 슬퍼할 이유들이 넘쳐나요. 시험에 떨어지기도 하고, 연인과 헤어지기도 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겪는 경우도 있잖아요.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에겐, 아주 많이 아픈 사건도, 조금은 덜 아픈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아지기 마련인데, 저한테는 나아지는 일 없이 항상 똑같았던 것 같아요. 물론 조금씩 괜찮아지기는 하지만, 겪어내야만 하는 새로운 슬픔이 쌓이는 게 훨씬 빠르더라구요.
슬픔이 쌓일 때 본능적으로 제일 먼저 하게되는 건 문을 걸어잠그고, 숨어있는 것이었어요. 참 이상해요. 우울증이 있다고 설명하면 참 쉬울 텐데, 혼자 멍하니 누워있는 모습을 어떻게든 숨기게 되거든요. 괜찮은 척 웃는 거, 참 잘 한답니다.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표정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감이 심한 날에는, 그냥 몸이 조금 안 좋다는 식으로 둘러대기도 했죠.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았어요. 셔츠랑 구두에 코트를 입는 걸 참 좋아하는 저인데, 코트는 이제 옷장에 넣어야 할까봐요. 올해들어 처음으로, 코트를 벗어서 팔에 걸치고 다녔네요. 참 그러고보니, 대표적인 증상 하나가 여기서 이렇게 나오네요. 계절이랑 날씨의 변화에 참 무감각해진다는 것 말이죠. 어딜 잘 안 나가게 되고, 며칠씩 잠만 자는 경우도 있죠. 사실 지난 주말에 그랬어요. 곰이 겨울잠 자듯이요.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네요. 큰 사건은 없었거든요.
오랜만에 셔츠들을 다 꺼내다 손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했어요. 보통은 세탁기에 대충 던져서 빨든가, 세탁소에 맡겨버리곤 했거든요. 아, 손빨래 할 수 있어도 드라이크리닝 맡길 걸 그랬어요. 아무리 빨아도 눈부신 하얀색은 절대 못 만들겠어서, 포기하고 세탁소에 보내면 항상 새 옷이 되어서 돌아오곤 했거든요. 온 힘 다해서 비벼 빠느라 손가락 마디가 다 벗겨지는 것 같지만, 예쁜 셔츠들 삭삭 널어놓으니 뿌듯하기도 하네요.
지난 싱가폴 출장 이후로, 햇수로는 2년만에 좋은 식당에 가서 시간도 보내고 왔어요. 옷 예쁘게 입어보려고 손빨래도 삭삭 해놓고, 구두도 닦고, 셔츠 다리고, 코트 보풀 제거하고. 날씨가 참 좋았던 덕분에 밥 먹고 산책도 했죠. 청계천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식당이었거든요. 그저께까진 겨울이었는데, 낮기온이 18도라니. 갑자기 성틈 다가온 봄이 참 신기하더라구요.
그래도 좀 기운을 내 보니, 기분좋을 일이 많네요:) 이렇게 조금씩 괜찮아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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