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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열아홉 사진작가가 만난 진상고객 유형


 얼마 전 개인적으로 페친이기도 한 찌니미미 님이 기고한 진상 포토그래퍼의 유형에 대한
글을 읽었다. 모델 불러다가 벗겨먹으려(?)한 진상 감성변태(사실 작가라 부르기도 부끄럽다)
들의 행태가 주 내용이었다. 꽤나 폭발적이었던 그 관심에 본인도 숟가락 좀 얹고자 준비했다.
모델의 눈으로 본 진상에 이은 사진업계 진상 시리즈 2탄,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진상 유형(필자가 열아홉이라는 건 보너스)



1. 페이는 이정도면 되죠?

 필자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까지만 학교에서 마치고, 검정고시로 일찍 졸업했다.
사실 꽤나 명문으로 알려진 고등학교를 다녔고 성적이 나빴다거나 사고를 쳐서 쫓겨난 건
아니다. 그냥 좀 지루했달까.. 그 이후로 꽤나 큰 디자인회사의 인턴도 했었고, 올해 여름에는
국내 대기업 L모 디스플레이(맞다 아이뻐 LCD 만드는 그 회사. L*트윈ㅅ.. 쿨럭)
해외봉사팀 특채 미디어팀장으로 한 달간 캄보디아 촬영도 다녀왔다. 물론 내 나이 열 아홉에,
현업에 종사하시는 많은 프로 작가님들처럼 경력이 풍부하진 않지만 위에 소개해 드린 대로
필자도 나름대로 내세울만 한 스펙과 작품이 있다.

 그런데 촬영문의를 하면서 다짜고짜 이런 촬영이고 쉬운 거니까 이거면 되죠? 라니
내가 구인자에게 일 하고싶다 연락한 것도 아닌데 다짜고짜 금액부터 들이민다.
그런 분에겐 조용히 대답해 드린다. 죄송해요 그날 다른 촬영이 예약돼 있어서..

웨딩 본식스냅 문의하면서 저랬던 분도 있었다는 건 안 비밀
                        


2. 와서 사진 좀 찍어줄래요? 페이는 못 드리지만 본인에게  좋은 기회일 거에요.

 무료촬영 물론 한다. 가끔 이벤트도 하고, 지인들 프로필도 찍어주고. 좋은 기회다 생각되면
페이 없어도 좋으니 찍게 해 주십쇼.. 하기도 한다. 필자도 브랜드를 런칭하고 프리랜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홍보용 데모 샷들이 필요했기에 정신건강 악화를 무릅쓰고 공짜, 혹은 염가에
촬영을 많이 나갔다. 사람의 심리가 그런지, 참 이상하게도 그런 클라이언트는 페이는 안 주면서
하나같이 아주 더럽게 까탈스럽다. 그리고 촬영을 부탁하는 거면서 너무나 당당하다. 이런
적반하장을 봤나! 까탈스러운 것 까지는 이해한다 치자. 그런데 고양이에게 과자를 주면
우유까지 달라고 한다고.. 공짜에 무한책임을 지우는 노예화 전략을 쓴다.

"다음에 또 와 줄 수 있죠?"

귀가 시리도록 아름다운 저 대사에 할 말을 잃는다.
나중에 보니 그런 작가들만 뽑아 악용하는 그런 곳이더라,
공짜 촬영도 마다 않는,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작가만 골라 뽑는..



3.집안 사정이 어려운가 봐요.. 좀 더 넣었어요.
  혹은, 사정은 딱해 보이지만 더 못 넣어줘서 미안해요.


 금수저는 못 물고 태어났어도 우리 부모님 집도 있고 차도 있는, 보이기엔 평범해도
자식에게만큼은 아끼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그런 분들이다. 내가
소년 가장도 아니고! 좋아서, 내 직업이라서 하는건데 선심 쓰는 척 지능적으로 우리
부모님을 디스하다니. 이런 힙합계의 거장을 봤나.

여기 나온 대사들 정리해서 상대방을 열 받게 만드는 창의적인 화법에 대해
기고 한 번 해야겠다. 좋은 글감을 제공해 주신 진상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4. 어떻게 열아홉 살짜리 초보를 제 웨딩에 쓸 수가 있죠?

 최근의 일이다. 럭셔리 웨딩사진을 표방하는 모 대형 업체 대표의 서브 작가로 촬영을
몇 번 나가게 됐다. 몇 차례의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모종의 방법으로 작가의
나이가 열 아홉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신부측에서(필자는 외주 촬영에 나갈 시엔 업체
측에만 나이를 알린다. 누가 그 민감한 개인정보를 모델에게 불었냐는 말이다!)
필자의 실력에 대해 강하게 불신, 항의했고, 초보를 쓰는 업체라고 웨딩 커뮤니티에
올리겠다며 대표를 협박, 결국 업체와의 계약이 그대로 종결됐다.

 필자의 홍보용 사이트와 경력내용을 보여 줬는데도 막무가내.
업체 대표는 이 바닥에 괜히 이상하게 소문 나면 수습이 어렵다며 계약을 종료하면서도
나중에 꼭 다시 같이 일 하자며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르고.. 

진상 아줌마 덕분에 큰 건 하나가 날아갔다.



5.어쩐지 별로다 싶었더니, 열아홉이라 그랬네.
 
 요건 정말 기분 나쁘니 짧게 치고 지나가련다. 어떻게든 꼬투리 잡는 부류.
필자는 누구나 불평할만 한 퀄리티로 당당하게 찍어 납품하는 그런 철면피가 아니다.
난 대기업 홍보팀과 연합뉴스를 비롯한 수 많은 언론사가 검증한 작가란 말이다!
최고가 아니면 깨어 부수는, 도예 장인같은 그런?(이건 멋진 척이니 엎드려 절 좀 받겠다)
거, 이중만 작가님이 찍으러 와도, 구도랑 색감 가지고 불평할 사람들.

그냥 시비가 걸고 싶었거나, 진짜 보는 눈 있는 사람들이거나..
       

                                                  
6. 어디 어린 것이 날 가르치려 들어?

 지인 소개로 날 알게 된 한복 쇼핑몰에서 연락을 해 왔다. 제품사진 촬영에 어려움이 있어
도움을 구한다고 했다. 듣자 하니 배경이 어둡게 나오고, 한복 상 하의의 색감과 밝기가
일정치 않다더라. 페이는 상식적인 선에서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부탁드린다고 했다.
개념 찬 클라이언트구나 싶어 신나게 달려갔다. 조명부터 카메라, 포토샵 작업까지
전반적인 코칭이 필요해 보였다. 코칭을 받는 사람은 부탁한 대표가 아니라 그쪽 직원.
업체 대표는 그 날이 휴일이었단다. 그런데 이 직원이란 사람이 뭔가 막힐 때마다
한숨 쉬며 혼잣말처럼(다 들리는) 짜증을 낸다. 정확히 들었다. "아..C 나이도 어린 것이"
대 놓고 애기했다면 그 자리에서 끊고 나왔겠지만, 이거 그랬다가는 나만 이상한 사람
되겠다 싶어 끝까지 다 코칭하고 나왔다.

이후에 대표와의 통화. 직원 태도에 대해 넌지시 얘기했다.
그랬더니 이후에 온 문자. 그 날 제가 없어서 죄송하다고. 직원이 그럴 줄은 몰랐다고.
그리고 약속된 금액보다 더 넣었다고..

진상 덕분에 덕 본 유니크한 케이스. 떙큐:D



7. 그 사진 좋던데, 좀 쓸게요. 네 사진 알려지고 좋잖아.

 2번 진상과 비슷한 케이스. 필자는 웨딩이나 상업사진 등 초상권이나 저작권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사진들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사용을 허락하는 편이다. 생각해 보라,
누군가가 내 사진을 좋아해서 그것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쓰고 싶어 한다니! 사진이
잘 나왔다는 반증이기에 참으로 고맙다. 그런데, 유명하지도 않거나 혹은 출처를 잘 밝히지
않기로 소문 난 사람들이 거만한 자세로 야 나 그것 좀 쓸게..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뭐냔 말이다. 사용료는 얼마나 드려야 하죠? 까진 기대도 않는다.써도 되나요? 도 아니고
잘 알려지고 좋을 거라며 선심 쓰는 척, 그냥 쓸게요 라니!

                        
되묻고 싶다. 그쪽이 쓴 업무 보고서 좀 써도 되죠? 당신 글 솜씨 알려지고 좋잖아:D



8.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홍해같이 넓으신 오지랖을 주체 못 하는 친절한 진상. 정작 가족은 아무 말 안 하는데,
아니 어떻게 도울까 생각하시는데 말이다. 자랑 좀 하자면 본인 성적이 누가 봐도 납득할만
한 선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현업 뛰어 작업을 하는 과정이 내 공부요, 작업한 경력과
결과물이 스펙이라구! 거 내 모의고사 성적표는 보고 얘기하시나? 아 물론, 필자도
약 20일 후에 있을 수능에 응시한다. 그래서 10월 촬영은 아예 안 받았다.

내 할 일은 내가 더 잘 압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오지랖을 갈라버릴까..



 호기롭게 써 내려왔는데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물론 참 좋은 클라이언트님도 많이 만났어요. 여름 이후로 같이 작업했던 L*디스플레이
봉사팀 여러분들이 사진 잘 찍어줘서 고맙다며 이런 저런 촬영을 맡겨 주시기도 했구요.
어린 나이부터 꿈을 찾아서 달려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죠.

진상 일정비의 법칙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법칙은 진국 일정비의 법칙이기도 하죠.
저는 오늘도 수많은 진상들을 헤쳐 나가며 열아홉의 끝으로 신나게 달려갑니다:D


Article by DreamstorySn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