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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자본력이, 실력이다.



어찌 된 일인지, 난 학교랑 참 악연이 깊다.
항상 실력으로 튀는 학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초등학교는 어떻게 간신히 잘 졸업했다만,
중학교는 국제중 추첨에서 밀려서 동네에 있던
유명한 꼴통 학교에서 3년을 고생했다.  


수준 맞는 애들이랑 공부하겠답시고 들어간 자사고에선
학업+학비 스트레스를 콤보로 얻어맞다가 못 버티고 자퇴하고.
(난 “네 학비 때문에 현금서비스까지 받았어”라고 내게 꽂아버린
어머니의 비수 같은 말이 아직도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여행 다니다  입학허가받았던 홍콩 창의력학교는
참 괜찮은 친구라며 교직원회의 끝에 학비까지 면제였는데
거기서 버틸 생활비가 없어서 날렸고.


다른 건 모르겠고, 학교나 한 번 제대로 다녀보는 게 꿈이다.
맘 편하게. 수준 맞는 애들이랑. 머리 좋은 애들이랑.


영어도 좀 하고, 자기 사업이나 프로젝트 아이디어도 좀 있고.
분야는 상관없지만 최소한 내가 진행하고 있는 엽서 여행처럼

그 분야에서 자기 커리어가 있는 애들이랑.


중학교 때 학교 대표로 교육청 여름 프로그램에 참가해봤었는데,
그때 만났던 애들은 참 괜찮았었다. 학교에서 맨날 보던
애들이랑은 다르게. 지금도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고.


하나는 미국 고등학교-대학교
또 하나는 캐나다 고등학교-대학교
다른 애는 과학고(조기졸업)-카이스트.


6년 전에는  이러나저러나 똑같았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부모의 자본력이 그들의 실력이 되어 있었다.
물론, 원래도 실력 좋은 친구들이지만,
돈이 실력에 날개를 달아 줬달까.


쉽게 말하면 나는 저급 몬스터를 300마리쯤 잡아야
간신히 레벨업을 하는데, 걔들은 나랑 같은 레벨로 시작해서
유료 아이템으로 무장하더니 어느새 만렙을 찍은 느낌.
게임할 때도 그런 걸 보면 힘 빠지는데, 현실이니 오죽할까.


경제적인 지원은 바라지도 않았다. 정서적인 지원이라도
잘 해 주었다면 좋았으련만. 있는데 없느니만 못 한 부모
밑에서 버텨야 했던, 6년이란 그 시간 동안 내 친구들은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름의 아픔은 당연히 있었겠지만,
어찌 됐든 간에, 담겨있던 그릇이 크지 않은가.
한국에 갇혀서, 돈에 갇혀서 고생하던 나랑은 다르게.


돈이야 뭐, 진학 한 3~4년 미루고 워홀이든 뭐든
어느 루트로든지 벌어 모으면 되기야 하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비용에 맞추자니 학교 그릇이 성에 안 차고.
그릇에 맞추자니 자본 동원이 불가능하다 싶고.


IQ 130이면 뭐하고, 영어 잘 하면 뭐하나 싶다.
열아홉 땐 대기업 사진 작업에, 엽서 여행 프로젝트에,
게하 매니저에. 이래저래 커리어 화려하면 뭐해.


내가 맘껏 능력을 발휘할 만 한 그릇에 담길 돈이 없는데.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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