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슝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호스텔 옥상에서 꽤나 많이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렇게 눈물을 쏟아내고도 왠지 모르게 힘이 솟았다. 달려가야 할 목표가 생겨서였을까. 마음속에 꽤나 오래 담아두었던 응어리들을 한 번에 털어내고 나니 홀가분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가지 않는다. 여행을 계속한다. 한국에 돌아가지 않는다... 여행을 계속한다... 그 누구도 간섭하거나 꼰대질 하거나 틀렸다고 손가락질하지 않는 이 곳에서, 나는 지금껏 누려보지 못했던 자유를 누리며 내 꿈을 펼쳐 보리라.
다가올 날은 가오슝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 좀 놀기로 했다. 가오슝에 있는 친구들도 만나고, 못 가본 곳에도 가 볼 생각이었다.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엽서를 파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목표는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얼굴을 대충 정리하고 라운지 층으로 내려갔더니, 룸메이트 몇 명과 처음 본 친구들 몇이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틈에 슬쩍 끼어서 나도 원래 거기 있었던 사람인 것처럼 대화를 시작했다. 브라질에서 온 Cesar라는 친구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는 타이페이에서 학교를 다니는 대학원생이었는데, 역사상 최초로 브라질과 대만의 대학교 사이에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대학 관계자들을 만나러 가오슝에 왔다고 했다. 북경어를 전공한 친구라 수준급의 북경어를 구사했는데, 그래서 난 처음에 대만인 스탭과 Cesar가 얘기를 나누는 걸 보고 꽤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왠지 너무나 멀어 보이는 아시아권과 남미. 그러나 그 둘이 절묘하게 어우러질 수 있는 곳, 게스트하우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지고 있던 편견과 좁았던 견문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라운지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출출할 시간쯤이 되면 한데 모여 편의점이나 동네 식당에 가곤 한다. 그곳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딱 9시쯤, 야식 먹기 좋을 시간이라 다들 지갑을 주섬주섬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근처에 있는 야식집에 갈까 하다가, 또 그렇게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서 편의점을 습격하러 갔다. 아시아, 유럽, 남미까지. 대여섯 명의 외국인들이 좁은 편의점 안에 모여 있으니 그도 참 재밌는 볼거리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나는 바나나우유와 빵을 골랐고, 다른 친구들도 나름대로 다양한 음식들을 골랐다. 우유에 과자와 빵 라면과 소시지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 밥까지. 계산대에 올려놓으니 편의점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들이 다 모여있는 듯했다. 다들 손에 한가득 먹을 것을 들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각자의 살던 동네 얘기, 학교 얘기부터 국제적 현안들과 꽤 묵직한 주제도 나왔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나도 엽서를 팔며 여행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다들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그중 Cesar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수준급의 북경어에 통찰력까지 겸비한 훈남이다 Cesar) 정리해 보면 “Johnny, 음.. 뭔가 처음 시작하는 거라면 한두 번은 공짜로 해 줘요. 그렇게 경험과 데이터를 쌓은 뒤에 조금씩 돈을 받으면서 경력을 쌓아 가고 입지를 굳히는 거죠. 일단 중요한 건 그 분야에 뛰어들어서 뭔가 해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 여행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가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중요한 조언이었다. 같은 주제로 글을 쓴 적도 있고 말이다. [링크-열정페이를 지배하라] 그런 이야기를 전한 나를 금수저로 생각한 어떤 사람에게, 월세 밀리기 시작하면 공짜로 일 못 한다며 욕을 먹기도 했지만, 최소한 내게는 경험적으로 증명된 방법이다. 그때 그를 만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내 여행에 있어서,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 있어 꽤나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호스텔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과 야식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괜찮은 아이디어도 얻고 하니, 복잡했던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됐던 것 같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동시에 감정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해 버린 결정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 내 맘속에 후회나 두려움은 없었다. 물론 고생길이 훤한 결정을 해 놓은 상황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런 압박감이 나를 더 잘 달리게 했던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해보기도 한다.
가오슝 마지막 날에는 폐 설탕공장 촬영과 가오슝에 사는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그리고 야간 버스로 타이페이에 가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 피곤하진 않았지만,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맘먹고 객실로 올라갔다. 설레지만, 긴장되는. 그런 밤이 찾아왔다.
이제는 스물한 살 꼬맹이가 쓰는,
스무 살 꼬맹이의 45개국 엽서여행 에세이
다음 이야기- 같은 곳, 다른 느낌
지난 이야기- 돌아보다, 꿈을 꾸다
첫 이야기 읽으러 가기- 엽서여행. 대만, 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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