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8시. 주어진 48시간 안에는 지쳐 누워있을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 머릿속 깊숙이까지 박혀 있어서였을까. 뭔가에 홀린 듯 눈이 저절로 떠졌다. 다행히 전날 밤, 엽서 판매의 산뜻한 스타트를 끊었기 때문에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일단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숙소로 돌아와 전날 밤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룸메이트들로부터 주변 정보를 좀 얻었다. 꽤나 다양한 곳들을 많이 다녀온 룸메이트들. 그중 한 명도 빠짐없이 다녀왔다는 곳이 치진 섬이었다. 큰 시장도 있고, 해변도 있고 해서 예쁘기도 하고,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단다. 지하철을 타고 20분 정도 나가서 유람선을 타면 된다고 했다. 일단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목적지를 치진 섬으로 정하고 필요한 물건들의 목록을 만들어 놓고는 하나씩 지워 가며 준비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나와 내 여행의 목적을 소개하는 여행 스토리북이었는데 호스텔 스탭 친구에게 부탁해, 미리 디자인해 두었던 스토리북을 인쇄할 수 있었다. 물병에 물을 담고, 엽서의 숫자를 세어 가방에 챙겨 넣고, 카메라를 들쳐 메고 길을 나섰다.
역시 대만은 더운 나라였다. 아무래도 섬이다 보니, 여름엔 비도 꽤나 많이 오는데 내가 가오슝에 있었던 그 주말은 날씨가 꽤나 괜찮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비라도 왔다면 그대로 발이 묶여 아무것도 못할 뻔했으니 말이다. 전날보다는 구름이 좀 많은 날씨. 그래서인지 태양의 뜨거운 기운은 좀 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동시에 꽤나 떨렸다. 전날 밤의 쏠쏠한 판매 실적이 오히려 약간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교회를 꽤나 오래 다녔던 터라 부활절에 거리에서 달걀을 나눠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뭔가를 팔아보려 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랬다. 이래저래 내가 만들었던 스토리북도 훑어보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시즈완 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역에서 구산 페리 선착장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정도 거리. 더운 날씨에 걸어가려니 땀이 꽤나 많이 났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20도 내외를 오고 가던 제주에서 지냈는데, 여긴 4월이라 해도 이미 한여름이었다. 비행기표를 취소하지 않고 여행을 계속한다면,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더운 나라로 갈 예정이었다. 때문에 35도를 우습게 찍고 내려오는 이 날씨에 빠르게 적응해야만 했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요금은 20 대만달러, 우리 돈으론 약 800원이었다. 유람선이라고 해 봐야 제주에서 우도 들어가는 배보다 이동거리가 짧다. 목적지는 저 건너에 눈으로도 보일 정도다. 그래서인지, 10분도 안 되어 도착했다. 내가 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쯤. 약간은 애매한 시간대라 섬을 주욱 훑어보고 괜찮은 곳을 정해서 판매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선착장에서 해변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식당과 가판들이 몰려 있었다. 아이들의 발걸음을 꽉 잡아놓는 장난감 가게들도 많았다. 마치 5월의 어린이대공원 입구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해변이 보였고 거긴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날씨가 그리 맑지는 않았지만, 그 해에 처음으로 보는 여름 바다였기 때문이었는지 괜한 설렘이 몰려왔다. 수영하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 모두 다 제각각, 일찍 찾아온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다 해변에 앉아있는 서양인 가족을 봤다. 일단 시작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쾌활하게 다가가(사실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 능글맞게 해변에 앉아있기 딱 좋은 날씨 아니냐며 말문을 뗐다. 런던에선 느끼기 힘든 날씨라며, 참 좋다고 기분 좋게 대답하는 영국인 아저씨. 그래서 1분만 시간을 빌릴 수 있냐고 물었더니 또 역시나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준비해 온 스토리북을 한 장씩 넘기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스토리북의 내용은 이렇다.
안녕하세요, 난 한국에서 온 사진작가, 스무 살 Johnny Kim이라고 해요. 내게는 꿈이 있답니다. 그건 온 세상의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거랍니다. 꿈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당신을 실패하지 않을 거란 내용이죠. 나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USD 200$만 가지고 집을 떠나 왔어요. 여행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 여비를 벌어서 45개국 세계일주를 하는 게 목표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직접 찍어서 만든 사진엽서를 가지고 나왔어요.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게 도와주지 않을래요?
그 가족은 "허허, 참 재미있는 친구구먼"하는 눈빛으로 내 얘기를 끝까지 귀 기울여 들었다. 그러면서 얘기하길 "와우, 네 이야기 참 놀랍다.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해. 내가 네 나이로 돌아간다 해도 난 그렇게 하지 못할 텐데. 괜찮다면 엽서를 좀 볼 수 있을까? 그런 멋진 일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돕고 싶어"라고 했다. 아저씨 옆에서 조용히 날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주머니. 딱 내 부모님 뻘로 보였고, 아들, 딸내미는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엽서를 꺼내 보여줬다. 열아홉 때 캄보디아에서 찍어왔던 사진엽서였다. 사진을 잠시 훑어보더니 지갑을 꺼내는 아저씨.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와 딸, 아들내미도 사진을 보더니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그래서 캄보디아 봉사활동팀에 사진작가로 다녀온 이야기와 내 이야기를 좀 더 했다. 그러면서 두 세트를 사겠다며 대만 돈 500달러를 건넸다. 내가 정한 엽서 가격은 200달러(7-8천 원 정도). 그래서 거스름돈을 주려고 지갑을 꺼내려하는데, 괜찮다며 날 말린다. 어린 친구가 돈도 조금 들고 나와서 고생하는데, 받기 미안하다며 donation으로 생각해달라고 했다. 연신 고맙단 말을 전하며, 명함에 영어 이름을 손글씨로 써 주었다. 내 이야기는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자주 올릴 테니 지켜봐 달라는 말도 했다. 능글맞은 척은 했지만, 워낙 정신이 없어서 사진도 못 찍었다.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 최소한 내 이야기를 멋지다고 받아들인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 위안이 되었다. 엽서 판다기보다 꿈을 전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 날 치진 섬에서 대여섯 세트를 팔았다. 금액 자체가 크지는 않았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내가 가지고 온 돈의 20%나 되는 액수였다. 되어질 것만 같았다. 그쯤에 살짝 결심을 한 것 같다. 돌아오는 목요일에 예정된 귀국 편을 취소하고 끝까지 버텨 보자는 쪽으로. 기분은 좋았지만, 꽤나 묵직한 마음을 품고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스물한 살 꼬맹이가 쓰는,
스무 살 꼬맹이의 45개국 엽서여행 에세이.
지난 이야기- 예술가와 사업가의 경계에서
첫 이야기 읽으러 가기- 엽서여행. 대만, 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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