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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꼬맹이의 45개국 엽서여행/라오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넉달만에 보는 한국에서의 일출. 티웨이항공 TW9136

 Samsung Galaxy S4, VSCO Cam

Photograph by Johnny Kim



 정제된 글이라기 보다, 그저 떠오르는 생각을 적고 싶었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네 시.이륙한지 한 시간이 조금 안 됐다. 감상에 젖은 건 아니고, 그냥 신기해서 그렇다. 2월 말, 삼일절을 끼워서 휴가를 받아 집에 잠깐 다녀온 후로 (사실 파워웨이브 수련회 가느라 집에선 딱 하룻밤만 잤다) 4개월만에 집에 돌아간다. 작년 12월 30일날 서울을 떠나 제주도로 갔으니 사실상은 여섯 달하고 스물 여섯 날.

 

 한국에 가는 건 돌아간다는 느낌보단 새로운 곳으로 여행하는 느낌이다. 어찌됐든 똑같지 않은가. 다른 곳들보다 현지 사정을 잘 알기에 조금 편하고, 현지 언어를 좀 아니까 편하고, 아는 사람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많다는 것 빼고는. 사실 가장 큰 변화는 지난 6개월동안 따라다녔던 “생존”이라는 고민을 덜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진 생각의 Capacity를 온전히 이 프로젝트에 쏟아낼 수 있으니까. 

 

 여행의 막바지, 라오스에 있을 땐 미화 500달러 규모의 투자도 받았고, 작은할아버지께서 타지에서 고생한다며 용돈도 두둑히 주셨다. 그럼에도 지난 6개월간, 아니 그 이전부터, 가진 것에 맞춰 몸에 배어버린 씀씀이는 전혀 커지질 않더라. 식당에서 간단히 한 끼 밥을 사 먹는 것이 특히. 라오스 현지 식당 음식. 평균 가격 2천원. 정말 맛있는 걸 시켜도 그래봐야 간신히 6천원인데. 프로젝트 시작한 이래 가장 부유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그 4천원의 차이가 참 커 보이고, “에이 나 혼자 먹는 밥 한끼인데 뭘 굳이’ 또는 “아 뭐 이리 비싸”라고 생각하며 2천원짜리 볶음밥을 시키고 있는 내가 참 재밌기도 하고,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물론 마지막 며칠은 사치 좀 부렸다. 안 마시던 음료수를 시켰거든. 나의 사랑 Sprite.

 

 없는 자원을 어떻게든 쥐어짜내 극도의 저 비용으로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대만에서도 한두 번 그랬고, 심지어 홍콩에선 약 2주간 돈이 거의 제로로 떨어진 (며칠간은 정말 한 푼도 없었다) 적도 있었거든. 아까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런 배고프고 힘들고 머리터지는 시간들을 보내며 훈련된 이 습관이 정말 감사하다. 금액이 얼마든, 그 안에서 최대한의 효용을 뽑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이다. 이건 앞으로의 프로젝트 진행과, 또 그 이후에 진행할 다른 사업들의 예산 집행에 있어서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인생 전반에 있어 아주 큰 자산이 될 테니까.

 

 사실 끝까지 씀씀이를 키우지 않았고,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Proceed하지 않은 건 철저한 계산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우기이기 떄문에 날씨 상태가 꽤나 별로인 데다가 1차 여정을 마무리하고 진행해야 할(돈 많이 들어가는) 일들을 처리해야 하니까. 매진 후 절판 상태인 캄보디아편과 홍콩 태국 라오스, 총 4개국 엽서 인쇄발주 비용만 20만원이다. 대만 단체주문 EMS배송비도 있고. 8월 중 출장 차 제주도도 한 번 다녀와야 하고, 한국에서 여러모로 도와주셨던 분들께, 많이는 못 해도 식사 대접이라도 해야 하고. 아 그리고 홍콩에 있을 때 가방 속에서 사망한 노트4와(보험 들어놨다 다행히).... (고장난 덴 없지만)고생한 카메라 점검 및 정비 비용. 그리고 이건 비용 문제를 뛰어넘는 부분인데, 가장 중요하게는 내가 꽤나 지쳤다는 것과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 단계라는 것에 있다.

 

 홍콩의 후반부부터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쉼이 필요한 시기가 곧 오리란 걸 직감하고 있었다. 물론 무리해서라도 남은 두 나라 작업을 진행할 수 있기는 했다. 다만, 45개국 중 이제 겨우 5개국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1차 여정에선 내 아이디어가 먹힌다는 것만 증명한 상태일 뿐인데, 여기서 기운 다 빠지면 큰일이지 않은가. 일단 이 밑도 끝도 없이 무모한 아이디어가 먹힌다는 건 증명됐으니, 개선점을 찾고, 방향을 수정하고 더욱 널리 알리고, 다음 여정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한.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 필요한 거다. 도저히 여유가 없어 남겨졌던 잔업을 처리하며 지구력을 키우는. 그런 시간. “초 저비용 고효율 생존”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도 되는 곳, 그곳이 한국, 집이기 때문에 귀국을 결정한 것이고.

 

 지난 6개월의 여정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하고, 새로 생겼다. 그런대로 제대로 생겨먹은 (그런대로 제대로 작동하기까지 한다) 웹사이트도 만들었고, 전 세계 많은 친구들과(덕분에 런던과 독일에서 지낼 곳도 생겼지..후후) 새로운 아이디어들과 신제품 대만편 엽서와 세 명의 매니저. 등등등...

 

 모든 지출이 시트에 기록된 것은 아니라서 아주 정확한 금액을 뽑기는 불가능하지만 총 지출 비용 약 220만원 으로 4개국 작업을 하고 돌아왔다. 처음 들고 간 2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200여 만원은 여러 방법으로 현지에서 벌어들인 금액(나쁜 짓은 안 했다ㅋㅋ)이다. 총 5번의 비행. 항공료 62만원을 제외하고 실 생활비용은 일 평균 만 오천원. 홍콩과 대만 체류기간 대부분의 숙소가 무료로 해결되었던 것의 효과가 크다. 식비를 줄인 것 덕분이기도 하고. 아니 식비를 줄여야만 했던 것이었지 참..ㅋㅋㅋㅋㅋ(덕분에 턱선을 얻었지만)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여러가지 기록들이 참 재미있다. 만오천원을 가지고 하루를 살면서도 먹을 거 다 먹고, 갈 데 다 갔고. 그 와중에 엽서 뽑았고. 참 가난한 생활을 한 것 같지만 부유하게 산 거다. 하루 1달러로 살아가는 아주 많은 극빈국 사람들의 보름치 생활비를 가지고 매일을 산 거니까. 전 세계를 돌아봐도 하루에 만 오천원씩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비율로는 몇 안 된다. “이 세상이 백 명의 마을이라면”에 잘 나온다. 더 줄일 수 있었던 불필요한 것들이 있었는지, 많이 돌아보게 된다.

 


여섯 시가 다 됐다. 두시간 반 쯤 남았네. 잠시 눈 좀 붙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