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삐딱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는 왜 컬링에 빠져들었을까

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여자 단체팀, 팀 킴_조선일보 제공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관심종목으로 급부상한 종목이 있다. 그 주인공은 스켈레톤과 컬링. 세계 최고 자리에 우뚝 선 윤성빈과 스켈레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고, 오늘은 컬링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컬링은 스코틀랜드에서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스포츠라고 전해진다. 경기의 목적은 간단하다. 원의 중심에, 상대의 스톤보다 나의 스톤을 가깝게 위치시킬 것. 그러나, 그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선수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컬링은 캐나다 등의 국가에서는 등록된 선수가 2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대중화된 스포츠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컬링은 비인기를 넘은 비인지 종목이었다. 컬링을 알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그저 '얼음판 위에서 하는 볼링 같은 스포츠'라고 간략하게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랬던 컬링이 언제부터인가, 다른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번 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과 대등한 인기를 누리며 동계올림픽의 새로운 관심종목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나도 컬링 경기만큼은 녹화중계를 통해서라도 챙겨보고 있다. 순식간에 관심종목으로 올라선 컬링, 그 이유를 몇 가지로 분석해보았다.



1. 메달 획득의 가능성

쇼트트랙과 크로스컨트리, 그 극명한 차이.

우리는 승리에 열광하고, 우승에 열광한다. 불편한 진실로 느껴질 수 있지만, 올림픽 경기의 인기도는 메달 획득 가능성에 비례한다. 또, 중계 우선순위에는 수익성의 논리가 개입되는데, 대중으로부터의 인기도가 높은 종목일수록, 광고료를 비싸게 받을 수 있어서 방송사에서 우선적으로 방송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이번 올림픽에서는, 대회 초반에 쇼트트랙과 컬링 경기가 겹칠 때 중간에 중계를 끊고 쇼트트랙으로 넘기거나, 아예 중계를 시작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 준결승 진출은 놓쳤지만 믹스더블 선수들이 미국을 9:1로 이기는 등 선전했고, 여자 단체팀이 세계 최강 캐나다와 스위스를 차례로 꺾으며 메달권 진입 가능성이 높아지자 우선적으로 중계해주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 소치 올림픽 때는 컬링 대표팀의 올림픽 출전 그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컬링팀은 이후 4년간 세계 정상급 팀들과 여러 국제대회에서 맞붙으며 메달을 획득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주며 화려하게 두 번째 올림픽 무대에 올라서게 됐다. 글을 쓰고 있는 2월 19일 현재, 여자 단체팀은 4승 1패를 기록하며 조 2위에 랭크되어 있고, 그중에는 세계 정상급 팀들을 큰 점수차로 이긴 게임이 많다. 이 기세라면, 올림픽 우승도 노려볼 법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상도 해 본다.



2. 생소함에서 오는 신기함

팔에 불나도록 얼음을 청소한다니!

지난 소치 올림픽 때 컬링이 관심종목으로 처음 떠오른 이유는, (다른 하나는 이후에 설명하겠지만) 생소함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얼음판 위에서 알까기 같은 경기를 하는데 그게 올림픽 종목이라고? 그리고 선수들이 단체로 나와서 솔로 열심히 얼음판을 닦는다고? 볼링도 아닌 것이, 당구도 아닌 것이 그 둘을 오묘하게 섞어놓은 듯하면서, 또 처음 보는 종목이기도 하면서 경기를 몇 번 보고 나니 대충 룰도 알 것 같은 그 신선한 충격이 한국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3. '한국적 정서'에 부합하는 경기의 성격

낯설지만, 왠지 친숙한 이 느낌

컬링은 사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러 스포츠의 요소들이 한데 모여있는 경기다. 일단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알까기와 궤를 같이한다는 것에서 가장 큰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컬링의 하우스는 양궁/사격의 과녁과 매우 비슷하다. 그리고 정밀한 컨트롤과, 화살이 과녁에 날아가 맞기까지의 조마조마함, 목표 지점에 정확히 들어갔을 때의 짜릿함도 비슷하다. 상대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가드 스톤을 세우고, 몇 수 앞을 바라보고 상대의 수를 예상하며 돌을 던지는 것은 바둑의 포석과 전략을 닮았다. 물론 크기는 매우 다르지만, 경기에 돌을 쓴다는 것 자체도 그렇고 말이다.

테이크아웃(상대의 돌을 밖으로 쳐내는 것)을 위해 내 스톤으로 상대의 스톤을 맞히는 각도와 세기를 조절하는 것은 당구, 특히 포켓볼을 닮았다. 각도를 잘 조절해서 한 번에 두 개 혹은 세 개의 스톤을 내보내는 샷도 있는데, 포켓볼에서도 역시 직접 칠 수 없는 공을 치기 위해서, 혹은 2득점 이상을 위해서 공들의 연쇄반응을 이용한다. 마지막으로 선/후 공의 전환은 야구의 공격권과 비슷하다. 야구에서처럼, 말 공격(후공)이 유리하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임의 요소가 이렇게나 많은데, 어찌 싫어할 수가 있을까:D



4. 선수들의 스타성

소치를 빛낸 올림픽 스타 컬스데이!

조금 전에 생소함을 이유로 들며 한 가지를 생략했는데, 그게 바로 선수들의 스타성이다. 축구의 박지성, 수영의 박태환 그리고 피겨의 김연아 등 스포츠의 흥행 중심에는 항상 스타플레이어들이 있다. 한국 컬링의 올림픽 데뷔전이었던 지난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에는, 여자 선수들의 외모가 컬링의 인기몰이에 큰 역할을 했다. 걸그룹이 가요계를 제패하는 나라에서, 4인조 여성 스포츠팀이라니. 오죽하면 선수들을 외모로 뽑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고, 특히 리드 이슬비 선수는 타이니 지의 도희와 닮은꼴로 화제가 되며 연예부 지면에 많은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때, 컬링요정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또, 경북체육회 여자팀(평창 올림픽 출전팀)의 감독인 김민정 감독은 당시 차분하고 정확한 해설로 사람들이 컬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경북체육회 팀과 경기도청 팀은 강력한 라이벌 사이다. 소치 올림픽에는 경기 팀이 출전하고, 경북 팀이 해설을 맡았는데, 이번에는 그 반대가 됐다. 경기도청 팀의 이슬비 선수는 이번 올림픽에 SBS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게 됐는데, 덕분에 MBC의 두 배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컬링요정에 이은, 컬링의 여신이라는 별명은 덤.




준결승행이 좌절된 믹스더블 팀과 남자 단체팀에게는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대단한 경기력으로 연승 행진을 이어가는 여자 단체팀에게는 응원을 보내본다. 이 정도 인기라면, 어쩌면 4년 후에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릴 때 즈음에는, 친구들에게 볼링 말고 컬링 치러 가자는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