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문제에 있어서, 많은 경우에 그 결정을 막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기 자신이다. 사실은 돈이 부족하지 않고, 사실 당신의 실력은 충분하며, 그 선택을 한다고 해서 모든 친구들이 한순간에 떠나가는 것도 아니다. 사실, 부정적 확신은 무의식적인 방어 행동이다. 불확실함을 기회가 아니라 위기로 받아들이고 회피하는 쪽이, 살아남는 데에 훨씬 도움이 되니까 말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 낸 핑계에 지나지 않다는 거다. 난 이 해석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됐고, 지금 시작해라와 같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거고.
그러나, 그런 내적 갈등이 주변인과의 관계와 얽히는 순간, 일은 급속도로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물론, 나와 같은 닥치고 마이웨이를 고수하는 사람들이라면 큰 고민을 않을 테지만 말이다. 나는 그랬다. 주도하느냐, 융화되느냐 하는 선택에서 나는 갈등을 끌고 다니는 쪽을 택했고, 내 입맛대로 내 주변을 리모델링했다. 부모는 아이가 행복해하면 그걸로 충분하고, 빈 친구들의 자리는 더 잘 맞는 사람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제로섬 게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참으며 착하게 사느냐, 저지르며 싸우고 사느냐. 두 가지뿐이다.
사실 부모 자식 얘기만큼 복잡한 얘기도 없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지만, 어른들이 하는 얘기들 중에 완전히 틀린 얘기도 없으니까 말이다. 부모의 반대라는 상황 앞에서, 논리적이기도 참 쉽지는 않지만, 정리를 해 보면 부모가 반대를 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정말로 위험하거나 나쁜 일일 때. 아니면, 부모가 잘 모르는(겪어보지 못한, 혹은 실패를 겪은) 부분이라 두려워서. 전자의 경우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됐고, 엄마 말 들어라. 그렇지만, 후자의 경우엔.. 하.. 쉽지 않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항상 저지르는 쪽이었다. 부모님은 심하게 반대했지만, 고등학교를 일찍 졸업했고, 돈을 벌었으며, 사업을 시작했고, 긴 여행을 다녀왔다. 부모님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가능하면 일을 키우지 않는 편이었지만, 나는 일하다 돈을 한 푼이라도 받지 못했다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받아내곤 했다. 난 부모님이 겁쟁이라고 생각했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경로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고, 심지어 바깥 나라에 한 번도 나갔다 오지 못한 부모를 둔, 사업하는 세계 여행자 아들내미. 사실 둘 사이에 갈등이 없는 게 이상하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우리 엄마들과, 우리 아빠들은 해외여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처음 들어간 직장이 평생직장이 되었으며, 누구나 나이 앞자리가 3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으며, 한 10년만 열심히 일하면 서울에 아파트가 한 채 생기던 시절을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러니, 딸내미가 해외에 여행을 간다는 것을, 아니 외박을 한다는 것조차 기겁을 하고, 직장을 자주 옮기며 잘 맞는 자리를 찾는 것을 못마땅해하며,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잔소리를 던지며, 아직 모아둔 돈이 그것밖에 안 되냐는 말을 한다.
그들에겐, 우리들의 모든 행동과 생각들이 새롭고, 두렵다. 당연한 소리를 가지고 이렇게나 길게 떠들어댈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할 따름이지만, 사실 그냥 그들은 조금 두려운 것뿐이다. 아들내미가, 딸내미가 잘 되어야 하는데, 잘못될까 봐. 그리고 그들은 종종, 본인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걸어온 길 곳곳에 숨어있던 진흙탕과 구름다리의 존재를 잊는다. 꿈과 열정과 의지는 무뎌지고, 지금 내가 가진, 집과 차와 가족에 집중하게 된다. 두려움은 분노로 표출된다. 이것 역시 방어 행동이다. 본인의 약함을 들키지 않으려는, 허풍이다. 그래서, 그들은 고집을 꺾지 못하는 우리에게 화를 낸다.
내 글에는 항상 확실한 결론이 있지만, 오늘만큼은 예외다. 아니 어쩌면, "자식이 책임지고 잘 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설득과 순응, 강행과 포기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모든 아들내미와 딸내미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던지고 싶었다. 그래도, 끌리는 방향이 있다면 일단 걸어가 봤으면 한다. 용돈이 깎이고, 잔소리는 좀 먹을지언정, 부모님 말만 듣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보는 쪽이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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