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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쟁이가 전해주는 IT 이야기

맥, 그리고 사용자 경험에 관한 이야기들



내가 맥을 쓰기 시작한 건 2014년 12월 즈음이다. 열아홉 살 때 열었던 내 전시회에서 작품을 판매한 수익이 80만 원정도 되었던 덕분에, 15인치 2010 Mid를 살 수 있었다. 그 당시 가격으로 60만 원. 애런데일 기반의 듀얼코어 i5-540 프로세서, 320기가 HDD에 4기가 메모리를 장착한 기본형 모델이었다. 그 당시 기준으로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맥이었지만, 그로부터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의 기준으로는 빡센 작업을 굴리며 현역으로 쓰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따르는 사양이 되었다. CPU는 i5라고 해도 노트북용 2세대 i3와 비슷한 성능인 데다, 메모리도 요즘 나오는 모델들과 비교했을 때 용량과 속도 모두 약간은 아쉽기 때문이다. 내부 인터페이스가 SATA2에 묶여있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그러나 부족한 하드웨어 성능을 커버해주는 OS와 풀 알루미늄 바디에서 오는 견고함은 그간의 사용기간 동안 조금은 빡빡한 스펙에서 오는 불편함을 어느 정도 잊게 해 줬다. 1년 반 만에 새로운 맥북을 들인 것을 기념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맥북프로와 OS X의 사용자 경험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한 입 베어문 사과

맥북의 아이덴티티라고 하면 누구나 먼저 떠올리는 것이 빛나는 사과 로고다. 애플의 상징이요, 된장질의 아이콘이기도 하고, 은회색의 밋밋한 외관에 딱 하나 얹은 디자인 포인트이기도 하다. 사실 시계에서부터 자동차까지, 우리가 구매를 결정하게 되는 결정적 요인은 그 성능보다 아름다움에 있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성능이 아니라 로고와 엠블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사과는 참으로 훌륭한 패션 아이템이자 애플의 마케팅 전략이 아닐까 한다. 솔직히 사과 로고는 누구 보여주기에도 좋긴 하다만, 그 전에 유저 본인이 보기에 참 예쁘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카페 창가 자리에서 글을 쓰다, 이따금씩 차를 한 모금 들이길 때면 어김없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창문에 비친 빛나는 사과 로고다. 괜스레 바라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예쁘다 하...



은회색의 알루미늄 갑옷

외관을 이야기하려면 또 빠질 수 없는 게 "알루미늄 유니바디”인데, 사실 맥북의 사용자 경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어떤 기계이든지, "그것을 사용하는 느낌”, 그러니까 사용자가 느끼는 기계적 완성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견고함과 반응성(반응성 부분은 운영체제 부분에서 다룰 예정)이다. 시계나 카메라, 자동차 등에서 "견고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제품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그러나 전자기기는 앞서 얘기한 제품들보다 견고하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 전자기기를 얇게 만들기 위해선 성능이나 견고함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얇아진 본체에 성능 좋은 칩들을 때려박으려면 칩의 크기를 줄이든지 얇은 옷을 입혀야 하는데, 보통의 경우엔 외피를 얇게 만드는 것이 전자의 방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싸게 먹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후자를 택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플라스틱이기 때문에)에는 얇아질수록 부작용이 늘어난다. (LG 그램의 휘어짐 이슈-링크)

그러나 애플은 플라스틱을 버리고 "통짜 알루미늄을 깎아 만드”는 방법으로 부품을 넣을 내부 공간과 견고함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게다가 열 전도성도 좋아서 한 부분만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따뜻해지면서, 키보드가 장착된 상판은 하나의 거대한 보조 방열판으로 작용한다. 맥북을 둘러싼 케이싱은 딱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하판, 상판 그리고 사과 로고가 그려진 덮개. 부품이 세 판이기 때문에 결합부의 숫자 자체가 딱 두 개인 데다가 각각의 견고함이 플라스틱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하니, 거기서 오는 견고함과 신뢰성은 꽤나 대단하다 할 수 있다. 물론 이 유니바디라는 녀석이 구매단가와 파손 시 수리비용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는 주범이기는 하지만, 비싼 값을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몇 주 전 가전매장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플라스틱 바디의 다른 노트북을 만져보고는 꽤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980그램이라는 놀라운 무게를 실현한 LG 그램의 경우, 바디가 마그네슘 합금인데도 서서 타이핑할 때 팜레스트가 휘어지며 눌렸고, 기기 자체가 흔들렸다. 한 손으로 들면 메인보드가 손상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둥글게 휘기도 했다. 사실 이런 불안정함은 일 년 반 동안 노트북이라는 제품을, 그중에서도 맥을 사용하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이라 알루미늄 바디가 이 정도로 견고하다는 것은 몰랐다. 타이핑이든 작업이든, 들고 다닐 때든, 노트북이라는 기기를 사용함에 있어 전반적인 환경들에 있어서 기기가 튼튼하다는 점은 어떤 경우에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사용자 경험에 있어 진정한 품질은, 너무나 당연해서 그것이 좋다는 것조차 잊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애플 유니바디 맥북 런칭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DoMRLZvBtXU


마우스를 잊게 만드는 매력, 그리고 키보드

맥북을 사용함에 있어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는 입력장치는 단연 트랙패드다. 적응하는데 하루 이틀쯤 걸리고 FPS게임을 하기에는 적절치 않지만, 웹서핑이나 원고작업, 메일 작성 등 일상적인 작업을 하는데에 있어서는 마우스의 훌륭한 대용품으로 작동하는 데다가, 트랙패드는 OS X의 미려한 UI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맥 전용 입력장치다. 한 손가락으로 터치하듯 탭 하면 클릭이 되고, 손가락 두 개로는 스크롤과 웹페이지의 앞으로, 뒤로 가기 등의 기능을, 세 손가락으로는 창을 드래그해 옮길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부드럽고 빠릿빠릿하게 작동한다. 익숙해지고 나면 맥과 한 몸이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트랙패드는 사용자와 기기를 아주 강력하게 묶어 준다.

또, 절대 빼먹을 수 없는 한 가지는 키보드다. 사실 요리도 그렇고 제품도 그렇고, 못 만들기 어려운 것이 잘 만들기도 어렵다. 특히나 마우스나 키보드 같은(전자기기 계의 된장찌개랄까) 기본적인 입력장치는 게임을 좋아하거나 글 쓰는 것을 업으로 하거나 하지 않으면 있는 대로, 그런대로 대충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제조사에서 굳이 공들여 만들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언제나 완성도와 사용자 경험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애플은 키 하나하나의 타건감과 작업 편의성을 위한 장치들을 사용자에게 생색내지도 않고 조용히, 너무나 당연한 기능인 것처럼 넣어 놨다. 윈도우용 키보드처럼 여러 기기간의 공용성을 생각할 필요가 없이 맥 OS 전용으로 디자인하다 보니, 화면 밝기, 키보드 백라이트, 음악 재생, 음량 조정 등의 기능키가 기본적으로 할당되어 있으며 각각의 기능키는 OS레벨에서 구동되기 때문에, 드라이버 호환성으로 인해 입력이 씹히거나 하는 일이 없다. 그리고 키 하나하나의 쫀득하게 감기는 타건감은 참 대단하다. 맥북 프로가 레티나 모델로 변경되면서 얇아진 두께 때문에, 최신 모델에서는 이런 느낌이 조금 죽었지만(최근에 출시된 "맥북"의 키감은 좀 당황스럽긴 했다), 여전히. 맥의 키보드는 노트북 치고 굉장히 훌륭한 편이다.

아 그리고 키보드 백라이트. 필자는 직업적 특성상 밤에 글을 쓸 일이 꽤 많다. 그리고 여행을 다닐 땐 내 맘대로 조명을 조절할 수 없는 숙소에서 지내던 때도 많았다. 일반 키보드를 사용하면서 언제나 불편하다 느꼈던 건 불을 끄고 작업을 할 때, 모니터의 밝기에 묻혀 키보드가 암흑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 손의 감각으로 키의 위치를 외워서 사용하기는 하지만, 시각적 보조장치가 있는 것과 완벽한 암흑 속에서 손의 감각만으로 타이핑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키보드에 한 번 익숙해지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꽤 예쁘다.



깔끔하다, OSX


하드웨어 얘기를 했으니 이제 소프트웨어로 넘어가 볼 차례다. 맥북이든 아이폰이든, 애플의 거의 모든 기기는 라인업이 단순하다. Intermediate 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면, 사용하는 칩셋과 내부 인터페이스가 거의 동일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하나의 운영체제를 비슷한 세대, 몇 종류의 기기에서만 이용한다. 맥의 OSX와 아이폰/패드의 IOS는 기본적으로 사용자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을 가능한 한 줄여주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부품 자체의 불량은 발생할지언정, 윈도의 방대한 기기 종류들에서 오는 다양한 오류와 드라이버 호환성 문제 등의 이슈는 맥에서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운영체제를 새로 설치했다고 해서 드라이버를 새로 잡아줄 필요도 없으며, Time Machine을 이용하면 무선랜의 비밀번호부터 모든 어플리케이션과 그 세팅값, 시스템 설정까지 백업/복구된다. 윈도우에 문제가 생겨서 흔히 말하는 포맷을 하고 나면 랜카드, 그래픽, 사운드, 블루투스, 칩셋 드라이버 등등등…의 드라이버를 일일히 따로 잡아줘야 하고, 모든 프로그램의 세팅이 그대로 날아가는 것에 비해(윈도의 시스템 복구는 솔직히 좀 많이 별로다) 얼마나 편한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다. 아, 맥에 문제가 생겨서 OS를 밀고 재설치해야 할 때는 USB 부팅디스크조차 필요가 없다. 인터넷 연결만 되어있다면 어디서든 "인터넷 복구”를 통해 운영체제 파일을 새로 내려받아 기기를 복구할 수 있다.

OSX는 언제나 미려하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트랙패드와 한 몸이 되어 구동되기 때문에 직관적이고, 탄성 스크롤을 어느 앱에서나 기본 지원하며, 스마트폰에서 쓰는 멀티터치를 노트북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앱 전환, 화면의 스크롤과 드래그, 런치패드의 동작까지. UI의 완성도와 하드웨어 호환성이 좋기 때문에 하드웨어 성능이 낮은 기기에서도 빠른 반응성과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이는 사용자로 하여금 스펙시트의 숫자들을 잠시 잊고 기기를 사용하는 데에만 집중하게 도와준다. 또, 맥에서 구동되는 모든 어플리케이션은 하나의 디자인 언어를 공유한다. 풀어서 얘기하면, 서로 다른 프로그램들이 통일된 모양의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앱을 구동하든지 간에 하나의 기기에 묶여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 역시 사용자의 집중도를 높여주며, 맥의 소프트웨어적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반증하는 중요한 요소다.

결정적으로, 부팅 시간이 아주 빠르다. SSD를 장착했다면, 전원 버튼을 누르고 바탕화면이 뜨는 데까지 10초가 채 안 걸린다. 바이바이 윈도우….


신뢰성 -Adobe Photoshop CS6의 작동이 중지되었습니다

사진과 디자인을 업으로 하다 보니, 항상 끼고 사는 프로그램이 어도비의 라이트룸과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다. 윈도우를 쓰는 디자이너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상황은 아마 아래와 같은 상황이지 않을까?


중간 저장을 잊으셨다구요? 짝짝짝! 야근 확정입니다:D


필자도 윈도우 쓰던 시절에 꽤나 고생하던 이슈였다. 게다가 해결했다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라 구글링을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져버려서, 결국은 3분에 한 번씩 강박적으로 Ctrl-S를 누르게 됐다. 참으로 놀라운 건 맥을 사용한 이래로 단 한 번도 프리징이나 비정상적인 종료로 인해 작업 파일을 날려먹은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건 윈도우 7을 쓰던 시절의 내 경험담이고, 요즘엔 맥보다 윈도우 기반 PC에서 포토샵이 더 효율적으로 동작한다는 벤치마크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데다가(맥과 PC가 동일한 스펙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윈도우 10으로 넘어오면서 저 해괴한 오류를 훨씬 덜 내뿜는다는 얘기도 있다. 다만, 윈도우와 비교해 작업이 빠르고 느리다 하는 건 둘째 치고서라도, 맥은 최소한 저런 해괴한 오류 메시지를 보여주며 퇴근해버리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점수를 얻었다. 신뢰성이라는 건 쌓아 올리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지만, 깎이는 데는 한두 번의 오작동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군인에게 총의 신뢰성은 본인의 목숨과 같고, 카메라의 신뢰성은 사진작가로 하여금 프레임 속의 세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맥은 참 믿음직한 작업 도구다. 예고 없이 뻗어버리는 윈도우 버젼의 오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된 게 맞다면 싼 맛에 쓰는 윈도우로 다시 돌아갈까 싶기도 한데, 같은 이슈로 호되게 당한 일이 몇 번 있어서(덕분에 야근과 철야를 몇 번을 더 했더라….) 눈길을 안 주게 되더라. 이미 내 생각은 빠르게 작업하다 날려먹어서 야근을 하느니, 조금은 느리게 안 날려먹고 작업하자는 쪽으로 굳어버렸다. 참 그 신뢰성이라는 게 오묘하다. 좋다는 걸 알아도 굳이 윈도우로 돌아가기가 참 꺼려진다.


지난 일 년 반 동안의 맥 사용기는 이쯤이면 충분하리라 싶다. 물론 여행 다니며 맥을 썼던 이야기를 여기에 곁들인다면 끝도 없겠지만 말이다. 물론 불편한 점도 많다. 다만 그건 맥의 완성도가 아니라 Active X와 IE만을 고집하는 IT 관련 정부 정책부서의 무능함 때문이기는 하다. 뱅킹은 주로 모바일을 이용하며(이용자 수가 엄청나다 보니, 어느 은행이든 맥보다 모바일 쪽에 신경을 많이 쓴다) 민원서류를 인쇄해야 할 때는 집 근처 PC방을 이용한다. 어차피 프린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게임을 포기해야 하는 게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 역시 집 근처에 널린 PC방을 이용하는 쪽이 새로이 데스크탑을 맞추고 게임 패키지를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에 이 정도 불편은 안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맥은 그 자체로 훌륭한 도구다. 어떤 작업을 하든지 간에 그에 맞는 워크스테이션으로 변화하는 잠재력과, 어떤 작업을 하든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계적/소프트웨어적 완성도를 두루 갖췄다. 물론 윈도우와 직/간접적으로 비교당하고 서로 견제하는 위치에 있기는 하지만, 윈도우든 맥이든 그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내가 맥을 주로 쓰는 이유는 윈도우보다 맥이 제공해 주는 기능들이 내게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지, 그 이상의 어떤 명분이나 고집 때문은 아니다. 다만, 108일간의 배낭여행과 사진 작업, 블로그 운영, 여행기 원고작업 등등.. 해야했던 업무들을 너무나도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도와준 것에서 큰 점수를 땄기 때문에, 맥은 앞으로도 쭉 내 책상 위, 사용하기 가장 편한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써보니, 참 좋다.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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