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삐딱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결국, 사람의 차이다.


얼마 전 꽤나 화제가 되었던 글이 있다. 빈촌과 부촌에 각각 피자배달을 하며 느낀, 빈부에 따른 사람들의 차이에 관한 알바생의 수필. 부촌 아파트에 배달을 가면 사람들 배달직원을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아이들도 마찬가지) 대하고, 재개발촌 주택가에 배달을 가면 대체로 막 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돈이 많으면서 개차반인 경우도, 가진 것은 조금 적지만 인품이 훌륭한 사람도 많다. 다만 빈부에 따라 인격의 수준이 높고 낮아지는 경향(tendency)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그 글에 공감한다.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생활을 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사실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느낀 순간은 비행기를 탈 때였다. 여행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작년 초부터 지금까지 여행, 출장, 강연 등으로 항공편을 최소한 열댓 번은 이용했으니 어느 정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노선별로는 김포-제주가 제일 많았고, 주로 저가항공의 평일 노선을 이용했다. 엄청 저렴하기 때문(심지어 2만 원에 탄 적도 있다- 링크). 업무 차(비용이 정산되는) 비행기를 타는 경우엔 보통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를 이용했다. 제주도 웨딩촬영이라든지, 제주에서 출발한 경북대 강연이라든지. 올해 초엔 이상하게 저가항공 항공권이 비싸서 아시아나를 몇 번 이용했고. 대한항공 프레스티지도 한두 번 타 봤다. 국내선이라 라운지가 좀 빈약했지만 좋긴 좋더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저가항공과 메인스트림 항공사의 표면적인 차이는, 가격과 서비스의 질이다. 발권 카운터는 구석에 박혀 있고, 수하물 중량 제한은 빡빡하며, 마일리지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고, 기내식을 먹으려면 비용을 추가해야 한다. 항공기 조종사도 경력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데, 기장의 등급이 높을수록 이착륙이 가능한 날씨의 범위가 넓다. 쉽게 말해 더 나쁜 날씨에도 이착륙할 수 있다는 얘기. 소자본 실속 운영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저가항공사는 대체로 낮은 등급의 조종사를 영입하는데, 이는 잦은 지연이나 결항으로 이어진다. 다만, 저가항공을 저가항공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내재적 요인은 좁은 좌석도, 자주 지연되는 스케줄도, 도착 게이트가 아니라 활주로 버스를 이용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가장 큰 차이는 사실, 옆에 타는 사람의 퀄리티다. 



서론에도 언급했듯이 인격의 수준은 빈부의 수준에 비례해서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아무래도 현금이 잘 굴러가면 먹고사는 문제 이외에 다른 부분으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 악기나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여행은 두말할 것도 없고.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할 때도, 여유가 있다면 그 본래의 목적 이외에도 그것을 이용할 때의 안락함과 편의성에 대한 돈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을 것이다. 김포에서 제주로 가는 항공편의 종류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2~5만 원짜리 저가항공, 6~9만 원짜리 아시아나 or 대한항공, 그리고 20만 원가량의 비즈니스석.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서비스의 가격은 최대 20배까지 차이가 난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6~9만 원의 메인스트림 항공을 선택할 거다. 한 시간을 날아가면서도 품격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20만 원짜리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거고. 그렇다면 남은 한 가지 옵션, 저가항공에는 실속파 혹은 불가피하게 저렴한 선택을 한 사람이 모일 거다. 그리고 집단의 평균 인격의 수준은 티켓의 값에 비례할 것이다. 이는 증명 가능한 사실이다.



진에어, 제주에어, 티웨이를 이용했을 때 공통적으로 보았던 모습들이다. 보딩 5-10분 전부터 탑승 줄은 이미 길게 늘어서 있다. 그렇게 사람들이 급하게 타기 때문에 탑승해서도 자리에 앉기까지 꽤나 오래 걸린다(위탁수하물 중량제한 때문에 기내 반입수하물이 많은 탓도 있기는 하지만). 승무원을 대하는 태도도 확실히 메인스트림과는 다르다. 폭언을 내뱉는 경우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승무원의 지시에 불응하며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던 사람들은 몇 번 봤다. 음료를 서비스할 때 감사하다는 얘기도 잘 안 한다. 도착할 땐 아직 일어나지 말라는 안내방송도 무시하고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복도를 메운다. 탑승할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밀리고 치이며, 힘겹게 내린다.


아시아나나 대한항공 승객들이라고 안 그런 건 아니다 물론. 서두부터 언급하고 있듯이 그런 경향이 있다는 거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겪어 보면 눈살 찌푸리게 되는 경우도 있고, 잠시동안은 저가항공사 비행기를 다시는 안 타겠다는 생각도 든다.  운이 좋지 않은 경우에 감당해야 할 정신적 부담은 줄여지는 티켓값보다 크다. 실속파인 필자는, 앞으로도 저가항공을 계속 이용할 예정이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저가항공 승객들 사이에도 선진 에티켓이 정착하길 바라본다.



결국, 사람의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