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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고교 자퇴 후, 어른이 되며 깨달은 몇 가지 사실들




우리가 다니는 학교의 교육모델은 산업혁명 때 만들어졌다. 그리고 거의 바뀌지 않았다.


지금의 시스템은 산업혁명 시절 독일에서 만들어졌다. 기계화되고 분업화된 공장에서 일할 일꾼들을 대량으로 생산해내기 위해서. 그게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태평양을 건너 일본으로, 일제시대를 통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 공교육 시스템 하에서 교육받은 모든 사람들은 200년 전에 개발된 방법으로 교육받았다는 얘기다. 물론 새로운 사실들과 현상들이 발견되면서 교과서의 내용은 달라졌을지라도, 그 근간이 되는 목적과 방법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신이 산업혁명 시절에 만들어진 공장이 아닌 곳에 취업했다면,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제대로 못 써먹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학교는 교육기관을 가장한 훈련/교정기관이다.


학교는 국민들의 인격 형성 시기인 청소년기에 가장 깊이, 그리고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관여해서, 한계와 관행에 익숙해지고 권력에 도전하지 않는 방법을 훈련시킨다. 또, 정체성을 임의로 부여하고 사회의 통념을 주입시킨다. 결국 고등학교를 잘 졸업하면, 자기도 모르게 "북한은 적국, 사회주의는 빨갱이, 일본에 대한 증오, 숟가락은 어른이 먼저, 교실 출입은 뒷문으로, 질문은 수업시간이 아니라 교무실로 조용히 찾아와서, 아랫사람이 의견을 내는 건 하극상, 부장님의 아재 개그엔 웃는 게 예의”같은 구세대적, 민족주의적 프레임 안에 갇혀있게 되는 거다. 국민의 능력과 창의성의 한계를 정부가 나서서 정해버리는 셈. 맨날 창조경제 노래하면 뭐하나. 국민들의 창의성은 자기들이 다 씹어먹어 놓고.  




중2병이란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부조리한 시스템과 듣지 않는 어른들이 존재할 뿐.


아이들이 14~16세쯤 되면 부조리한 학교과 사회의 문제들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아이들이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로 문제제기를 한다. 학교를 거부한다든지,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불만을 글과 그림으로 표출한다든지. 다만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하는 아이들이 정신병자로 낙인찍히는 거다.     




학교는 졸업 후 실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깔끔하게 빼고 가르친다.


학교에서 수도요금 등의 공과금과 세금을 내는 방법을 배운 사람이 있는가? 헌법상 납세의 의무가 있다는 건 가르치면서 어떤 세금을 어떻게 계산하고 어떻게 내야 하는지는 가르치지 않는다. 고등학교 "법과 정치”와 “경제”등에서 세금의 종류와 관련 법률에 대해 비교적 세세하게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이공계열 학생들은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 현실이다.




수능과 대학이 목표라면 공교육은 철저하게 버려라.


학교 교사들의 공식적 명칭은 교육공무원이다. 다시 말해 동사무소에서 당신에게 서류를 떼어 주는 직원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얘기. 웬만해선 잘리는 법이 없는 데다가 은퇴 이후에 받는 연금까지 보장되어 있다. 오죽하면 교사는 일등 신랑/신붓감이란 얘기가 나올까. 학생들의 교사 평가제도와 성과급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수업을 잘 하든 잘 못하든 어느 정도만 하면 밥벌이가 되니(엄청 잘 한대서 더 버는 것도 아니고), 이들에겐 굳이 머리를 싸매고 밤을 새워 교수법을 연구할 당위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사립학교들이 좀 낫기는 하지만 오히려 학교 재단과의 유착관계 때문에 이쪽 교사들의 상태가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물론 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올바른 교육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교단에 서는 분들이 더 많기야 하지만, 학생 떨어지면 자기 목도 떨어지는 학원 선생들의 절박함에서 나오는 노력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강남 사교육비가 괜히 비싼 게 아니다. 학생이 특출 나게 머리가 좋은 경우가 아니라면 돈 바른 만큼(교사의 실력 만큼) 성적 나오는 건 당연지사.




자퇴생이라고 무조건 무시하는 풍토? 미안하지만 그런 건 없다.


필자가 특출 나게 잘났거나,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자퇴하고 나서도 잘 사는 게 아니다. 필요한 것들(수능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찾아 공부하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주어지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달렸기 때문이지. 중요한 건 학업의 중퇴 여부가 아니라, 본인의 실력과 내공의 깊이다. 당신이 스스로의 성장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한 데다, 비전도 없고 인성까지 별로라면 자퇴를 하지 않았더라도 무시당할 거다.




솔직히 후회한다. 더 일찍 나올 걸 그랬다.


학교에 10년 6개월이나 갇혀 있었다. 부모의 만류(무자비한 폭력을 동반한 협박) 때문에 스스로 공부하기로 결심하고도 4년 반이나 더 버티며 기회를 기다려야 했던 탓이 크다. 학교 밖 세상이 얼마나 재밌고, 얼마나 많은 기회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조금도 알지 못한 채로, 씁쓸한 우등생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그래야 덜 맞았으니까.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오랫동안 억눌려 있었던 잠재력들이 날개를 펴기 시작했고, 심리적으로도 안정되어 갔다. 교문을 박차고 날아오른 지 만으로 2년 반이 된 지금은 디자이너 겸 여행사진작가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대학? 갈 거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신나게 돈 버는 생활을 조금만 더 즐기다가. 한국 아닌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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