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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꼬맹이의 45개국 엽서여행/대만

돌아보다, 꿈을 꾸다

*이번 편에는 꽤나 묵직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에 따라서, 몇몇에게는 읽기 거북할 수도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여행기 전체를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은 글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번 편은 잠시 접어 두고 다음 이야기들을 읽으시다, 문득 궁금할 때 돌아오셔도 괜찮습니다. 그때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고 싶어, 오탈자 검토도 없이 초고 그대로 내보냅니다. 제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을 내어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봅니다.

가오슝. 이 여행의, 그리고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


숙소에 돌아와서 샤워를 했다. 그리고 항구가 보이는 호스텔 옥상에 올라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나름대로 계획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오슝의 밤 공기는 시원했다. 변함없이 습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비를 쏟을 심산이었는지 전날과는 다르게 별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계획 없이 "엽서를 팔아 여행을 계속한다”는 목표 하나만 가지고 떠나온 지 4일. 자정이 넘은 시간에 숙소에 찾아갈 길조차 막연했던 며칠 전의 상황에 비하면 정말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해도 될 만큼, 상황이 좋아졌다. 일단 휴대폰에 구글 맵을 통해 가오슝 전체의 오프라인 지도를 미리 로딩해 두었고, 내 이야기를 전할 스토리북도 만들었다. 그리고 최소한 당장 굶지 않아도 되는 돈에 더해서 다음 인쇄를 할 수 있을만 한 돈도 있었다.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잘 하고있었다. 기차표를 사고 숙소를 예약하고 밥을 사 먹었지만 아직 잔액은 20만원에 근접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다음 주 목요일에 한국에 돌아갈 수 있는 티켓도 아직은 살려 둔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 가진 돈만으로 여행을 지속한다 해도 최소한의 보험은 있는 셈이었다. 무급이기는 하지만 타이페이에서 호스텔 컨설턴트로 일하며 지낼 자리도 만들어 둔 상태였고, 무엇보다 이 아이디어가 먹혀 들어간다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오후에 치진 섬에서 엽서를 팔며, 귀국하지 않고 이 밑도 끝도 없는 프로젝트를 계속해 봐야겠다는 쪽으로 내 마음이 확실히 기울기는 했지만,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선택을 해야 했다.

가오슝에서 승부를 보자고 마음먹고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온 내게 보여진 상황들은 이 여행을 계속해도 괜찮다는, 탐스러운 메시지를 너무나 향기롭게 전하고 있었다. 분명 돈이 다 떨어질 수도 있고, 심하게 다칠 수도 있고, 한국 아닌 곳에서 마지막 숨을 내 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는 했지만,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굶어죽든지 심하게 다치든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디에 있든지, 방식은 조금 다르겠지만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지 않은가. 어른이 된 이상 내 살 길은 내가 찾아야 하는 거고, 나쁜 일은 언제 어디서든 내게 닥쳐올 수 있다. 결정적으로, 한국엔 내가 “집”이라고 부를만 한, 내가 편하게 돌아가 쉴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단지 "조금 다른 교육”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학교라는 공간이 힘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진 매질과, 투명인간 취급을 견뎌내야 했다. 그곳은, 내가 자란 그 집은, 내게 집이 아니었다. 돌아간다 해서 월세를 내든지 하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도 이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든 간섭하지 않는 상황이 되기는 했지만, 행복 그리고 삶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그곳은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내가 살았던 그 집은 수없이 많은 상처들과 삶을 포기하겠다 맘 먹었던 순간들이 마른 눈물자국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이제야 조금 행복해졌는데, 이제야 트라우마로 인한 악몽을 조금은 덜 꾸게 되었는데, 그곳으로 돌아가란 이야기는 내게 죽으란 이야기와 다름없었다.
 
학교를 그만두겠단 결심을 한 날 아침에 든 생각이 있다. 왠지모를 병치레와 스트레스, 그리고 부모의 압박을 버텨내다못해 모든 걸 포기하고 터져버린 그 날의 그 생각. 학교 다니다 쓰러져 죽든, 스트레스에 미쳐서 뛰어내려 죽든, 맞아 죽든, 어쨌든 죽을 거라면, 죽자.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마음이었다. 내게 돌아갈 곳은 없었다. 이러나 저러나 갈 곳 없는 고아 신세였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몇 마디 이야기를 나지막이 읊조렸다.

“해 보려구요. 되어질 것 같아서요. 되어질 거라고 믿을래요. 돌아갈 곳이 없네요. 도와주세요, 사랑해요."

이제는 스물한 살 꼬맹이가 쓰는

스무 살 꼬맹이의 45개국 엽서여행 에세이 

다음 이야기- 가자, 타이페이로!

첫 이야기 읽으러 가기- 엽서여행. 대만, 그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