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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꼬맹이의 45개국 엽서여행/대만

가오슝, 미지의 세계로.



여행 3일 차, 금요일 아침. 역시나 눈이 일찍 떠졌다.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지만, 아직 새로운 환경에 긴장한 상태여서였을까. 아니면 저 멀리 가오슝으로 떠나는 날이어서였을까.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라 조금은 두려웠지만, 동시에 꽤나 기대되고 흥분되기도 했다. 가지고 온 짐이라고는 백팩 하나와 삼각대 케이스, 두 바퀴 달린 20인치 캐리어 하나가 다였으니, 챙길만한 짐도 별로 없었다. 물론 두 가방 모두 그리 크지 않았던 터라, 이것저것 꽉꽉 눌러 담아야만 했지만. 스탭 친구들에게 다음 주에 보자는 얘기를 하고, 짐을 챙겨 들고 길을 나섰다.



비가 부스스 떨어지는 아침이었다. 시먼딩의 아침, 역시 명동과 같은 곳이어서일까, 열려있는 가게도 돌아다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몇 블럭쯤 걸어 근처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샌드위치, 햄버거 그리고 볶음면 같이 간단하게 아침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파는 곳이었다. 앉을 수 있는 의자라고는 골목에 펼쳐진 간이 테이블 두 개가 전부. 그래서인지 가격도 참 저렴했다. 게다가 점원도 센스 있고 친절했다. 메뉴판을 받아 들고 당황하는 날 보더니 바로 영어로 된 메뉴를 건네주더라. 대만에 6주간 있으면서 북경어를 어느 정도 익히긴 했지만(아 이건 자랑인데, 발음만 보면 한 3년 살았던 유학생 같단 얘기도 자주 들었다) 여행을 마친 지금도 여전히 문맹 상태인데, 그땐 오죽했을까.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맙단 얘기를 하고 버거와 음료를 주문했다. 역시 2천 원 정도의 착한 가격. 수도의 시내 한 복판에 있는 가게인데도 이런 가격에 운영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타이페이 역까지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걸으면 약 15분 정도. 원래대로라면 걸어서 이동했을 법 하지만, 장거리 여행을 시작하는 길에 걷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여서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햄버거를 오물오물 베어 먹으며, 신나게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전날 밤 Sunny와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전철역에서 기차역으로 가는 환승 통로의 방향을 미리 알아뒀던 덕에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티켓값은 NT843$. 3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가격이었다. 전날 기차역에 거리판매를 나온 길에 미리 사놓았기 때문에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플랫폼으로 향하기 전에 간단한 간식과 점심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빵부터 시작해서 초밥까지, 도처에 내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음식들이 요염한 자태로 누워 있었다. 간신히 머릿속 검은 아이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난 후 소심하게 삼각김밥에 생수를 샀다. 기차를 다섯 시간이나 탈 사람의 간식 치고는 꽤나 단출하였다. 분명 이겼는데 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출발한 시각은 오전 열 시. 예정된 도착시간은 오후 세 시. 총 다섯 시간의 여정. 열아홉 때 캄보디아에서 타 봤던 씨엠립 행 슬리핑 버스 이후로 가장 긴 이동시간이었다. 자리도 꽤 넓고 좌석도 푹신했다. 다만,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허리나 어깨가 배기진 않을까 걱정되긴 했다. 이래저래 짐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으니, 이내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남쪽에 있는, 대만 제 2의 도시 가오슝을 향해. 허리가 아플까 하는 걱정도 잠시. 시내를 빠져나온 지 20분도 안 되었는데도 기차는 이미 푸른 들판과 시골 주택가를 스쳐 지나치고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대만의 시골 풍경에 아낌없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논, 밭, 시골집 그리고 저 멀리 서 있는 높은 산들. 대만은 한국과 꽤나 닮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지나갔다. 이곳에 온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들 말이다. 돌아오는 목요일에 예약된 귀국행 비행기표를 취소할 것인가, 취소하고 계속 진행한다면 엽서를 어떤 방식으로 판매할 것이며, 수익을 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어떤 것이 있으며, 당장 남은 20만 원으로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내겐 어떤 일들이 펼쳐질 것인지. 정말 살아서 돌아갈 수는 있는 것인지에 대한 걱정도 됐다. 내가 저질러 놓은 사건의 무게감이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나는 듯했다. 그렇지만 담담했다. 저 아래에선 짜릿함도 올라오는 것 같았다. 홀로 떠나온 것이긴 했지만, 믿는 구석은 있었다. 슬프게도 부모님이나 가족은 아니었다. 꽤나 울퉁불퉁한 청소년기를 보냈기에, 집이 편안하다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생각이 깊어질수록 부모로부터 꽤나 오랜 기간 동안 받았던 깊은 상처들과 심각한 트라우마들이 묵직하게 올라왔다. 사실 다행이었다. 멀리 떠나왔기에, 부모라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내게 상처를 줄 수 없으니까. 앞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만날 일이 없을 거다 싶었다. 전화야 안 받으면 그만이고. 귀국 편을 취소하지 않고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서울로 바로 돌아가진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안개 낀 시골 풍경을 한없이 바라보다 창가에 기대 잠시 잠에 들었다. 잠에 든 지도 모른 채로.


깨어 보니 오후 한 시쯤. 창 밖엔 아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섬의 서북부에서 출발한 기차는 어느새 서남부의 주요 도시인 타이난 시를 지나고 있었다. 자기 전에 눈물을 흘렸는지, 셔츠에 젖었다 마른 자국이 나 있었다. 기분전환도 좀 할 겸,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리고는 노트북을 열어 한국에서 다운로드하여 온 '꽃보다 할배’ 대만 편을 틀었다. 아침에 사 온 삼각김밥을 오물오물 씹으면서. 이제야 얘기하는 사실이지만, 대만을 첫 목적지로 선택한 이유는 꽃할배 때문이다. 얼마나 재밌게 봤는지 모른다. 집 아닌 곳, 한국 아닌 곳에 대한 로망이 가득할 때 보아서였을까. 열아홉 때 보았던 그 예능프로그램 하나가 내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냥 그땐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 대만에 간다면, '쓰다 야시장’에서 저녁을 먹고 화롄에 가서 서지니처럼 타이루거 협곡의 물을 만져 보고, 베이터우에 가서 온천욕을 즐기겠다고.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그때 내 맘속엔 담아뒀던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룰만한 돈도 있었다.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떠났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번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러겠다 싶다. 그게 내 천성인 것 같다. 꿈을 꾸더라도 괜찮은 꿈을 꿔야겠다. 엽서 여행처럼. 항상 조금 무모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돈 생겼을 때 얼른 떠나버리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오슝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느꼈다. 아, 여긴 다른 세상이구나. 며칠간 비가 와서 조금은 서늘했던 타이페이와는 다르게 여긴 말 그대로 여름이었다. 아침에 타이페이에서는 반팔티에 긴 팔 셔츠, 그리고 자켓까지 입어야만 했었다. 자켓은 기차 안에서 가방으로 쫓겨났고, 긴팔 셔츠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가방 속으로 쫓겨났다. 그렇게 긴팔 브라더즈는 사이좋게 가방 속으로 유배를 갔다. 그 날 가오슝의 기온은 영상 28도. 며칠 전까지 제주의 기온은 22도, 아침 타이페이는 24도였다.  역에서 밖으로 나오니 상황은 더 심각했다. 순식간에 4월에서 8월로 타임슬립을 한 느낌이랄까. 날씨는 맑았지만 태양은 정말 말 그대로 따가웠다. 안 그래도 내 피부색은 사시사철 구릿빛인데, 큰일 났다 싶었다. 다섯 시간만에 제대로 움직여서인지 몸은 굳어 있는데다, 갑작스러운 더위에 피로가 몰려왔다.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까지 5분은 걸렸던 것 같다. 가방을 끌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숙소는 같은 곳으로 2박을 예약해 두었다. 가격은 1박에 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구글맵도 있고, 데이터도 있어서 숙소에 찾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 걸음에 땀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날씨만 빼면 말이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기도 전에 침대에 누웠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덕분에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잠시 누워있다가 생수 한 모금을 들이키며 정신을 차렸다. 이젠 진짜 결전의 시간이었다.

돌아갈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내 운명은 앞으로 48시간 안에 펼쳐질 사건들에 달려 있었다.


이제는 스물한 살 꼬맹이가 쓰는,

스무 살 꼬맹이의 45개국 엽서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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