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도착했을 때, 내게 있는 것이라고는 작은 캐리어 하나와 배낭 그리고 기본적인 여행용 짐(옷가지, 노트북, 카메라) 뿐이었다. 가진 돈은 현금 20만 원. 정확히는 현금과 체크카드에 각각 10만 원씩. 현금화할 수 있는 또 다른 자산으로는 약 10만 원가량의 돌아갈 비행기표(대만은 여행비자만으론 편도 티켓으로 입국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구매)가 있었다.
아, 가지고 있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캄보디아 사진엽서 30세트였다. 2014년 말에 첫 전시를 기획하면서 제작했던 기념품이다. 세트에 6천 원이었던 한국 가격으로 따지면 대략 20만 원어치. 엽서가 정가에 완판 되고, 한 푼도 쓰지 않는다 해도 가용할 수 있는 최대 예산은 4-50만 원뿐이었다. 한 3-4일쯤 놀러 왔다 치면 충분할 예산이었지만, 일정도 기약도 없는 무전여행을 떠나온 터라 이 금액은 전혀 충분할 수 없었다. 새로운 엽서를 만들어내기 전까진 마지막 동전 한 닢까지 계획적으로 소비해야만 했다.
현지 시간으로 밤 열한 시. 기상상황 때문에 한 시간여를 공중에서 대기한 후에야 간신히 착륙할 수 있었다. 심야 시간이라 입국심사 게이트는 절반 이상이 닫혀 있었고 덕분에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예정 도착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어진 시각에 간신히 공항 로비에 나올 수 있었다. 대만에 도착한 날은 2015년 4월 8일.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인데도 그때의 그 설렘과 두려움과 긴장된 발걸음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조금은 차가웠던 비 오는 날 밤공기와 귓전을 때리던 낯선 언어의 목소리들도.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버스회사들의 사무실도 모두 닫혀 있었다. 중국어는 할 줄 몰랐고, 영어는 잘 안 통했던 터라 더 긴장됐던 것 같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선불 심카드를 판매하는 통신사 사무실도 모두 닫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데이터도, 와이파이도 심지어 타이페이 지도도 없는 채로 야심한 시각에, 버스 번호와 주소 하나만 가지고 숙소를 찾아가야 할 운명에 처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버스는 20분 간격으로 24시간 운행되었던 터라 공항에서 노숙을 할 필요는 없었다.
조금은 당황한 마음을 다잡고 간신히 티켓 자판기에서 표를 샀다. 그리고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 채로 타이페이행 1819번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한 시간쯤 달렸을까, 버스가 타이페이 시내에 들어서더니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시내 도로를 달린지 20분쯤 되니 내 목적지인 타이페이 중앙역에 도착했다. 비 오는 날 새벽 세시 반에, 우산조차 없었던 나는 거의 버려지듯 타이페이 중앙역 광장에 떨어졌다.
타이페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숙소 주소 하나뿐이었지만, 잠시 보았던 구글 지도에서 어렴풋이 봤던 방향으로, 조금은 긴장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순간엔 앞으로 이 여행의 향방이 어찌될지보다 숙소에 찾아가는 문제가 더 컸다. 그렇게 스무 살 꼬맹이의 무모한 꿈은, 시작부터 차가운 현실과 맞닿게 됐다.
이제는 스물한 살 꼬맹이가 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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